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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3. 13世 〉27. <광양공>통정대부휘계생묘갈명(通政大夫諱繼生墓碣銘)
1. 문헌 목록 〉13. 13世 〉29. <태사공>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취죽재공휘난서묘표(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翠竹齋公諱蘭瑞墓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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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절제공>모의당공휘효원신도비명(慕義堂公諱孝元神道碑銘)
慕義堂公諱孝元神道碑銘 鳴陽縣長北面柯谷後壬坐之原故壬辰倡義趙公諱孝元字行源衣履之藏壬辰之燹趙文烈高忠烈二先生首倡義旅立勤于錦山嗚呼當時人士義二公之義死二公之死死而不死古人云一死强於百萬然則錦山一死雖謂之國家重恢基本可也時則有若趙公以鎭海縣監方家食聞變號痛倡率義士粮餉器機令行即辨以爲豊沛爲國家之根本眞殿之所在領兵赴救聞高霽峰駐陣錦山與趙重峰將合師討賊進興同盟委以助防之任盖公智勇絶倫爲衆所信服流民歸附軍聲大振都分將卒擧旗戰士皆殊死蹙賊兵于土城礱不敢出日暮退兵翌日厲氣巡軍將合戰有金成憲者策馬而遁防禦陣先潰公方奮身斬賊聞大將未得脱策馬突入手斬數十級所向技靡馬忽中丸而斃徒歩衝突又斬數賊將力盡而殞即七月十日也家人以衣履替佳城錄宣武勳 今上甲戌 贈户曹參判公早習弓馬選武第歷宗簿主簿出宰務安廉公有威天性至孝移孝之忠與光岳同其崢嶸吁盛矣趙氏玉川大族玉川府院君元吉其上祖考命聖 贈承旨妣昌寧成氏父通政公生壬子八月二十四日享年四十一配貞夫人昌原具氏進士廷説女三男鳳普工曹佐郎益普瓦署別提德普長房孫尚俊刑曹參議尚慶別座尚白尚昌後孫將竪石于神道問銘於宇萬病淹床第硯墨生塵而褒忠奘節爲今日急務不辭而諾來請銘者銘曰玉川之趙所袒農隱農隱所樹罔僕麗運忠孝世風久而不泯逮至于公有光先烈斬賊無算卓卓其節竟以立慬以死報國文烈忠烈天壤同傳公與之久切存扶倫今日何日又是壬辰九原英作誰與同歸柯谷之阡芳草韮韮公靈不死冥佑庶幾 歲戊申暮春 幸州 奇宇萬 撰 모의당공휘효원신도비명(慕義堂公諱孝元神道碑銘)(墓義堂公諱孝元은節制公의八代孫이다.) 鳴陽縣 長北面 柯谷 뒤편 壬坐의 언덕은 壬辰倭亂때 倡義한, 諱가 孝元이며 字는 行源인 趙公의 幽宅이다. 壬辰亂때 趙文烈 高忠烈 두 선생이 선두에 서서 의병을 모아, 금산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아 슬프다. 당시의 사람들이 두 선생의 뜻을 받들어 같이 하였으므로, 죽었으나 죽지 않은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한번 죽음이 백만보다 강하다」고 하였으니, 금산에서 한번 죽음으로써 국가는 그 기본을 거듭 넓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당시 趙公은 鎭海縣監으로 변을 듣고 슬피 부르짖으며 義士를 불러 모아 거느리고 군량 기계는 영을 내려 곧 준비하고 「전주는 국가의 근본이요 진전을 모신 곳이라」 하고 군사를 거느리고, 도착하여 전주를 구하였다. 고제봉이 금산에 주둔하여 조중봉과 장차 군사를 합하여 적을 토벌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아가 함께 하기로 맹약하니 조방장에 입명하였다. 대개 공의 용맹함이 무리중에 뛰어나 여러 사람이 신복하였다. 그리하여 난민이 歸附하니 군성이 크게 떨치었다. 부대의 장군과 병졸을 나누어 깃발을 날리며 싸움을 독려하니, 사졸이 죽음을 무릅쓰고 적병을 토성에 압축하매, 두려워 감히 항전치 못하였다. 날이 저물어 퇴군하고 다음날 기운을 가다듬고 진중을 순행하며 장차 총공격을 하려할 즈음에, 金成憲이란 자가 말을 달려 도망하므로 방어진이 먼저 무너지고 말았다. 공이 바야흐로 뛰어 나와 적과 싸우고 있는데, 대장이 적에게 포위되어 빠져 나오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을 달려 돌입하여, 적 수십명을 베었으나 말이 문득 탄환을 맞고 쓰러졌다. 도보로 또 적과 충돌하여 적장 수명을 참살하고 진력을 다 하였으나 운명하니, 그 때가 七月 十日이었다. 집안 사람들이 옷과 신발을 챙겨 장사한 후, 宣武勳을 받았으며 今上甲戌年에 户曹參判에 증직되었다. 공은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익혀 武科에 올라 宗簿主簿를 거쳐 務安縣監으로 나가니 청렴하고 공정하며 위엄이 있었다. 천성이 지효하여 효도를 옮긴 충성이 光岳과 더불어 함께 높으니 감탄스럽고 성대하도다. 趙氏는 玉川大家로 玉川府院君 元吉이 그 上祖요 考는 贈 承旨 命聖이요 妣는 昌寧 成氏인데 그 父는 通政이다. 公이 壬子년 八月 二十四日에 태어나 향년이 四十一歲요, 配는 貞夫人 昌原의 進士 具廷説의 따님이었다. 三男을 두셨는데 鳳普는 工曹佐郎이고 益普는 瓦署別提이며, 德普가 있다. 長房孫 尚俊은 刑曹參議이고 尚慶은 別座이고 尚白 尚昌이 있었다. 후손들이 장차 碑를 神道에 세우기 위해 碑銘을 宇萬에게 청하나 병사에 누워 있어 벼루와 먹에 티끌이 생기나 충성으로 褒揚할 장절이 오늘의 급선무라 사절하지 못하고 새기되 옥천 조씨의 조상은 농은 선생이요, 玉川之趙所袒農隱 농은이 세운 바는 려말 충절이라. 農隱所樹罔僕麗運 충효의 세풍이 오랫동안 유전하니 忠孝世風久而不泯 공의 충절이 선열을 더욱 빛내도다. 逮至于公有光先烈 수없이 적을 참살하였으니 높고 높은 그 절개로다. 斬賊無算卓卓其節 마침내 말가죽으로 몸을 두르니 죽음으로써 국은에 보답하네 竟以立慬以死報國 文烈 忠烈로 천지에 함께 전했네. 文烈忠烈天壤同傳 공이 이와 더불어 倫綱을 오랫동안 유지시키니, 公與之久切存扶倫 오늘은 무슨 날인고 또 임진이로다. 今日何日又是壬辰 구원의 영혼이 누구와 함께 돌아갈꼬 九原英作誰與同歸 가곡의 묘소에 꽃과 잡초만 무성하도다. 柯谷之阡芳草菲菲 공의 영혼이 사라지지 않기를 하늘에 바라노라. 公靈不死冥佑庶幾 무신년 늦봄에 행주 기우만이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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